농월초지(朧月草紙)



스페셜 18권에 실린 에피소드. 리나들과 헤어진 후 혼자서 여행하던 제르가디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느 키메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다소 진부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제르가디스 팬분들의 필독서.



달이 보인다.

떠들어대는 나뭇잎들 사이로.

풀의 냄새가 섞인 밤바람이 뺨을 간질여, 그는 문득 자신으로 돌아와 쓴웃음을 지었다.

후드에 감춰진 입가에.

-몰려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동료' 라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다.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몸이긴 하지만 노숙같은 걸 하고 있자면 가끔씩 깨달을 때가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동료' 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바로 오늘처럼.

그리고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동료' 들과 만난 무렵부터이리라. 그가 자신의 이 육체를 옛날 만큼 싫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하지만 그래도 욕망은 있다.

원래의 몸으로-

보통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강렬한 굶주림과도 닮은 욕망은.

예전에-

그는 힘을 원했다.

-원한다면 드릴까요? 힘을-

한 사람의 마도사의 말에 그는 끄덕이고 - 그리고 힘을 얻었다.

블로우 데몬과 스톤 고렘과 합성되어 정상적인 인간의 몸을 잃는 것에 의해.

그리고 싸움이 시작됐다.

그 - 제르가디스의,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찾는 실마리도 없는 긴 싸움이.

예전에 보통 인간이었을 때의 단정한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은 은의 실. 달빛에 비춰지고 있는 것은 바위 피부.

평소에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하얀 마스크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감추며, 밤에도 여관 같은 곳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노숙으로 때우는 날도 많았다.

나무 줄기에 등을 맡긴 채 그는 그 눈을 감고-

꿈틀.

작게 몸을 떨고 그는 눈을 떴다.

갑자기 기미가 나타난 것이다.

그를 향한 강한 기미-

살기가.

그 주인은 그의 시선이 향한 끝에 있었다.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밤의 산.

잡목이 만드는 어둠에 뒤섞여 뭔가가 그곳에 서 있다.

크기는 몸집이 큰 남자 정도일까.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은 아니었다.

이상하리만큼 길게 뻗은 목과 손. 그리고 얼굴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밝혀진 두 개의 붉은 빛.

-타앗!

찰나.

대지를 차고 그것이 뛰었다.

동시에 제르가디스는 옆에 둔 검을 손에 쥐고 땅을 달렸다.

사삭!

풀을 울리며 두 개의 그림자가 교착했다.

제르의 손에 들린 은의 칼날은 살짝 상대의 몸을 스치고 상대의 무기는 제르의 뺨을 스치고 있었다.

제르와 이형(異形) 과는 발을 돌려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찢긴 마스크가 훌렁 벗겨져 제르가디스의 맨 얼굴이 달빛에 드러난다.

그 순간.

이형에게서 살기가 사라졌다.

그대로 크게 뒤로 뛰어 숲의 어둠으로 사라져간다.

.....................?

습격당한 이유도 모른다. 상대가 갑자기 떠난 이유도.

하지만 떠난 자를 쫓으면서까지 그걸 밝혀 내겠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이라면 이미 관계없는 일이다. 노려지고 있는 거라면 지금 쫓지 않아도 언젠가 그쪽에서 찾아온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대로 여기서 노숙을 한다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라는 것도 확실.

"...바꿀까... 장소를..."

검을 거두고 짐을 들고, 그리고 제르가디스는 걸어나갔다.

이형이 사라진 것과 반대 방향으로.

 

"-멈춰라!"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후로 얼마 가지 않은 사이-

산기슭에 작은 마을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근처에서의 일이었다.

상대의 존재는 조금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쪽에서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은 단지 귀찮았기 때문에.

"찾았다! 이자식! 이제 놓치지 않겠다!"

소리를 높인 것은 한 명의 청년.

검은 머리카락, 탄탄한 갑옷에 제르를 향해 들이댄 롱 소드.

풍체로 봐서 떠돌이 용병이라는 것일까.

그렇다고는 해도 보기에 나이는 20세가 될까 말까. 탄탄한 갑옷도 뭔가 약간 어울리지 않고 초심자라는 인상이 있다.

"...무슨 소리지...?"

"시치미 떼지마! ...알겠어? 저항하지 말고! 얌전히 마을까지 따라와 주실까!"

"꼬마가 너무 나서면 다쳐."

"닥쳐! 됐으니까 입 다물고 걸어!"

그 말을 듣고 제르는 살며시 작게 한숨을 쉬고 걸어갔다.

이 자리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건 쉽다, 실제, 몇년 전의 제르라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도망친다, 라는 방법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어느쪽도 귀찮았다.

게다가-

흥미가 생긴 것이다. 조금.

일의 진행상황에.

 

"돌아왔다! 마크씨다!"

"누가 같이 있어!"

"녀석인가!?"

마을로 발을 들이민 제르들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었다.

보통이라면 모두 조용히 자고 있어도 좋을 시간인데 마을 근처 여기저기에는 횃불이 지펴져 있고 마을 사람들도 상당한 인수가 밖에 나와있다.

"잡아왔어! 이 녀석이다!"

용병 - 마크는 득의만면, 제르 쪽으로 턱을 들어올렸다.

횃불의 빛이 찰나, 마스크를 잃은 제르의 얼굴을 비추고-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을 사람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화... 확실히 인간이 아니야..."

"그렇다면 이 녀석이...!"

"우리 애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르의 한마디에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딱, 하고 침묵했다.

"목표가 틀렸어. 난 무관계다."

"무관계!? 웃기지마!"

목소리를 높인 것은 마크였다.

"네놈이다! 네놈이 한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그러고보니... 뭔가 틀린 듯한 기분도..."

"무슨 소릴!?"

조심스래 말한 마을 사람 한 명을 마크는 노려보아 침묵시키고,

"내가 그놈을 쫓아서 산에 들어갔다! 그곳에 이 녀석이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여기에!"

...후우...

제르는 한숨을 한번 쉬고 스윽,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봐."

따라서 올려다보는 마을 사람들.

시선의 끝은 교교한 달.

제르는 입 안에서 주문을 외워 '힘 있는 말' 을 풀어냈다.

"파이어 볼."

가리킨 손가락 끝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간 것은 파랗고 작은 빛의 구.

그리고-

타악.

제르가디스가 손가락을 튕긴 그 찰나.

 

쿠과광!

 

터지며 흩어지는 빛의 구가 밤 하늘에 맹렬한 불꽃을 피웠다.

"-본 대로다-"

폭음의 여운이 흐르는 밤 바람 속에서 제르가디스는 소리도 없이 경직한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달이 아주 조금 기울어지는 동안에 이 마을을 깨끗이 태워버릴 수도 있다. 어째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대답은 간단하다.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아... 알겠다! 오해라는 건 잘 알았다!"

제르의 말에 마을 사람 한 명이 초조한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불쾌해진 마크가 부르는 소리는 무시하고,

"잘 알았으니까! 부탁이야! 불좀 꺼줘!"

-불을 끈다?

제르가 돌아보니 지금 일격으로 불이 옮겨붙었는지 한 채의 집 지붕이 활활 작은 불꽃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

만약 이 자리에 그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 있었다면 제르의 볼의 한줄기 땀을 놓치는 일은 없었겠지만...

"-좋아."

마치 그것조차 처음부터 계산했다는 듯한 냉정한 어조로 대답하고 주문을 외워,

"프리즈 브릿드."

키잉!

애초에 소화 주문같은 거 배워뒀을 리 없다. 목표를 얼리는 주문으로 타오르는 지붕을 얼음에 가두었다.

"이, 이번엔 얼음이냐아아아아앗!"

"소란피우지 마. 타는 것 보단 낫잖아. 남을 함부로 의심한 죄값이라고 생각해."

내뱉은 제르의 말에 마을 사람은 마지못해서 침묵했다.

하지만 - 마크 쪽은 가만있지 않는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 녀석과 무관계라고는 할 수 없잖아! 뭔가를 꾸미고 마을에 왔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준다면 되는 거지."

말하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나온 것은 한 명의 노인이었다.

"촌장!?"

"...이 마을은 말이네, 최근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습격당하고 있네. 보기에 상당한 실력을 가진 모양이고. 어떤가? 여기선 한 번, 자네의 의심을 푼다는 의미로 그 녀석을 퇴치하는데 손을 빌려주지 않겠나?"

-과연. 그런 건가-

제르는 내심 중얼거렸다.

숲 속에서 갑자기 습격해온 그 이형 - 그게 이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자겠지.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주실까. 난 별로 의심받든 어떻든 상관없어. 급한 여행인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로 한가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좀...! 물론 괴물을 퇴치해 준다면 꼭 나름대로의 사례는 할 건데..."

"촌장!"

마크의 항의는 다시 무시.

...확실히 노자는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자신을 의심한 녀석들의 힘이 되줄 정도로 관대한 인간이 될 생각은 없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

말하려고 한 제르의 뇌리에 순간, 데자뷰가 생겨났다.

그러고보니 이전에도 -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마도서를 둘러싸고 사신을 숭배하는 집단과 대립하여 - 한 명의 암살자와 한 명의 프리스트와 만났다.

결국 그 사건으로 남은 것은 자기 자신의 무력감 뿐-

(역자 주: 소설 5권의 내용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암살자라는 건 즈마, 프리스트는 물론 제로스.)

"...뭐어... 상관 없겠지."

정신이 드니 촌장의 말에 제르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들어. 너."

다음날 밤.

한 채 밖에 없는 여관의 1층. 술집 겸 식당의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제르의 맞은편에 허락도 없이 걸터앉자마자 큰 소리로 선언한 것은 마크였다.

다른 손님들이 일순 조용해진 속에서-

"그렇겠지."

한 사람 제르는 상대의 말을 받아넘기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상대도 해주지 않아-

마크의 얼굴에 분노의 붉은 빛이 돈다.

물론 마크가 제르에게 반감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닌 일. 실수로 제르를 끌고 와서 면목이 통째로 망가진 끝에 촌장은 '건내준 전금은 그대로 좋지만 사례금은 괴물을 쓰러트린 쪽에 내겠다' 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자신이 잘못해서 끌고온 것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라고 하면 확실히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유쾌할 리는 없다.

"...정말이지... 남의 일을 가로채고 말이야..."

"네가 그 '괴물' 이라는 녀석을 쓰러트리면 가로챌 수 없지."

계속 툴툴거리는 마크에게 역시 시선 조차 보내지 않고 제르는 받아넘겼다.

"간단히 말하고 있어! 그 녀석이 얼마나 성가신 녀석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뭐어, 어린애 손에 질 만한 녀석은 아닌 것 같더군."

"뭐라고!?"

"열받지 마. 할 수 있는게 말싸움 뿐이라면 처음부터 걸지를 마라."

"...이자식... 깔보고 있어...!"

"깔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어쨌든..."

말하다가 제르는 말을 중단했다.

"...어쨌든... 뭐야?"

"들리지 않았나?"

말하고 벌떡 일어서는 제르가디스. 그 손에는 이미 옆에 세워뒀던 검이 쥐어져 있다.

"뭐가?"

"비명이다."

대답했을 때는 이미 벌써 제르는 가게의 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아! 이봐!"

당황해서 뒤를 쫓는 마크.

가게 밖에는 어둠과 횃불 - 그리고 먼 웅성거림이 있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달려나간 제르보다 반보 늦어서 마크도 달려나왔다.

마크는 내심 혀를 찼다.

그 술집의 웅성거리는 안, 그것도 말싸움을 한창 하면서 먼 비명을 듣다니.

하지만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고,

"알겠어! 그 녀석은 내 사냥감이니까! 손대지 마!"

"그럼 내가 손을 대기 전에 네가 쓰러트리면 될 뿐의 일이다. 그걸 할 수 없다면 너도 어차피 거기까지듸 실력이라는 거지."

"뭐어엇!?"

대답하는 제르에게 화내는 마크.

"말싸움을 하고 있을 시간은 없는 것 같아 - 상황은!?"

말의 후반은 앞쪽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던진 말이었다.

"디... 디모시의 아이가 당했다! 그놈, 마을 북쪽에서 들어와서..."

"그래서 녀석은! 어디있지!"

허둥대던 마을 사람은 제르의 질타에 다소 자신으로 돌아가,

"...아... 아니... 몰라. 하지만 그렇게 멀리는 가지 않았을 거다. 감시하던 사람들도 녀석이 마을을 나가는 건 못봤어."

"...과연..."

천천히. 제르는 발길을 돌렸다.

"확실히 멀리는 가지 않은 것 같다."

입 안에서 주문을 외워-

"아이시클 란스!"

돌아섬과 동시에 밤하늘을 향해 주문을 던졌다!

하늘로 날아가는 냉기의 창은 밤바람 속에서 튕겨 흩어졌다.

날아오는 한 줄기의 불꽃 창에 요격당하여.

"-저건-!"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민가의 지붕 위. 떠 있는 달을 등에, 머물러 있는 검은 그림자 하나.

"녀석이다!"

마크가 외친 그 찰나. 그것은 지붕을 차고 달려나갔다.

"당신들은 여기 있어!"

내뱉고 제르는 달려갔다. 틀림없다. 어젯 밤 산 속에서 그의 앞에 나타난 그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쓰러트려주겠어!"

함께 뛰어오는 마크 쪽에 제르는 흘끗 눈길을 주고,

"따라오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망설이지 말고 도망가. 알겠지."

"시끄러! 초보자라고 얕보지 마!"

"호오. 역시 초보인가."

"...웃...!"

그 말을 듣고 침묵하는 마크.

이형은 이윽고 마을의 끝, 횃불과 자경단(自警團)들이 있는 마을 외곽으로 다가왔다.

"손대지 마! 다쳐!"

제르의 말에 응한 건지 아니면 단지 겁먹은 것 뿐인지 길을 비키는 자경단들.

그 사이를 빠져나가 이형은 쉽게 포위를 뚫고 빛 하나도 없는 산 속으로 뛰어갔다.

그 뒤를 제르와 마크 두 사람이 쫓는다.

풀을 밟고, 풀숲을 뚫고.

얼마 가지 않은 사이에 마크는 조금씩 이형과 제르에게서 떨어져갔다.

"...이... 기다려 이봐...!"

물론 그런 부름이 들릴 리는 없다.

"기다리라고...! 했잖...!"

말하는 사이에도 거리는 점점 벌어져 이윽고 이형과 제르의 모습은 완전히 마크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젠장...! 어째서지...!"

어깨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욕을 해대며 그 자리에 발을 멈췄다.

어젯밤은 조금 더 그 이형을 추적했었는데.

마크는 알채지 못했다. 어젯밤, 이형이 마크를 떨쳐내려고 마음 먹었다면 떨쳐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그 이유를.

이형은 마크를 유인해서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르가디스라는 난입자가 없었다면 이형은 그것을 실행에 옮겼으리라.

"...제기랄!"

놓쳤다고는 해도 혼자서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돌아가 솔직하게 그렇게 말해서는 그거야말로 면목이 통째로 망가진다.

할 수 없이 마크는 나무 사이를 단서도 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만들어낸 나뭇잎 소리에 벌레들의 소리가 섞여 울려퍼진다.

서 있는 나무에서 새들어오는 농월의 빛 속에서 관목의 숲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이 산의 어딘가에 있을 터인 이형의 그림자를 연상시켰다.

...사삭...

우뚝!

작은 나뭇잎 소리에 검에 손을 대고 허둥지둥 돌아보지만 그곳에 움직이는 것은 없다.

"...토끼같은 건가..."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중얼거리고,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돌아서...

-눈 앞에 - 이형이 있었다.

-!?-

사고가 일순 정지했다.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서 마크는 처음으로 상대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벌어진, 남달리 커다란 양 눈동자.

머리카락도 눈썹도 없이 부어터져 희끄무레한 머리 아래에는 이상하게 긴 목이 익사체처럼 부풀어 올라 비뚤어진 몸으로 이어져 있다.

긴 양 팔의 끝에는 달빛을 받아 빛나는 - 손톱.

찰나.

마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크게 뒤로 뛰고 있었다.

동시에 이형이 땅을 찼다.

퍽!

충격.

몸을 반회전시켜 밸런스를 반은 잃으면서도 그럭저럭 넘어지는 것만은 모면한다.

"큭!"

바로 지금 옆을 지나간 이형 쪽으로 허둥지둥 방향을 고치다가-

주룩.

오른쪽 옆구리의 미지근한 액체를 깨달았다.

-베였다!?

의식한 순간.

아픔이 생겨났다.

"...큭...!"

무릎이 떨린다.

심장의 고동에 따라 상처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윽... 으... 아...!"

그대로 마크는 무릎을 굽혔다.

이형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짐승이 우는 듯한 낮은 신음을 흘려 불꽃의 창을 만들었다.

마크는 이미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

그 말이 마크의 뇌리에 떠올라 새겨졌다.

카악!

이형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불꽃의 창은 마크를 목표로 맹렬히 전진했다!

퍼엉!

폭음에 움찔! 하고 작게 몸을 움츠리고-

한 호흡을 두고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레 떠-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눈 앞에 서 있는 하얀 그림자를.

"...너... 너..."

마크의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안들렸는지 제르가디스는 그저 가만히 이형과 마주한 채 서 있었다.

그 손에는 붉은 빛을 도신에 담은 한 자루의 검.

마력을 머금은 검의 일격으로 날아오는 불꽃의 창을 쳐냈다는 것 따위, 물론 마크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 살려... 나... 살..."

이미 지면에 뻗어 가늘은 목소리로 말하는 마크에게, 그러나 제르는 흘끗 잠시 눈길을 줬을 뿐 다시 시선을 이형 쪽으로 돌리고,

"말했을 텐데. 꼬마가 너무 나서면 다친다고."

"...으..."

"그리고 또 하나. 어째서 용병같은 걸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인 척 하면서 거드름 피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면 이 장사는 어울리지 않아, 라는 거다."

"...눈치챘던... 건가..."

마크 - 미란다 마크스타는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호오... 여자였나..."

목소리는 제르가디스의 것도, 물론 미란다의 것도 아니었다.

-이형-

"...마... 말할 수 있는 거야...!?"

놀란 목소리를 높인 것은 미란다 한 사람.

"당연하지. 이 녀석은 나랑 마찬가지로 인간이니까 말이야."

제르의 대답에 이형은 쿡쿡쿡, 하고 억누르는 웃음을 띄우며,

"...그렇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인간이었다... 란가스... 그게 내 이름이다... 이전에는 작은 나라의 병사였다... 어느 날, 왕이 나라에서 쫓겨나 나는 그에 따라갔다... 그 왕이 나에게 한 짓이 이거다... 날 괴물로 만들어... -난 도망쳤다. 도망쳐서 이 산으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건가."

"-괴물이라고 불러댔던 거다! 그 여자는! 나를!"

제르의 중얼거림에 란가스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마을의 여자다! 뭐하러 왔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 녀석은... 내 모습을 보고 괴물, 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죽이려 한 거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녀석들이 날 거부한다면 나도 녀석들의 존재를 거부한다! 그것뿐의 일이다! 너도 그렇지! 알고 있어! 아아! 알고 말고! 어젯밤, 이 산에서 너와 만났을 때부터 알았던 거다! 너도 그렇다! 누군가에 의해 그런 몸이 되서! 주위의 하찮은 인간들한테서 괴물이라고 불리고! 미운 거지!? 세상이! 인간이! 세계가! 너도 알고 있겠지!? 동료다! 우리들은! 괴물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우리들은 인간따위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그러니까- 복수하자! 나와 함께! 세계에!"

-침묵이 떨어졌다.

란가스의 고뇌와 희열, 그리고 광기가 섞인 말의 후에.

미란다는 그저 가만히, 제르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이 남자가 끄덕인다면-

"-그래서-?"

짧았는지 길었는지 잘 알 수 없는 침묵의 후-

제르가디스는 흥미롭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 우선은 그 여자를..."

"착각하지 마."

희희낙락한 란가스의 말을 가로막고 제르는 말했다.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인가? 그렇게 물은 건데."

이번에는 일순, 란가스 쪽이 침묵했다.

"...어... 어이어이... 기다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동료잖아. 우리들은. 단숨에 그 여자를 죽여버리고 나서 마을을..."

"착각하지 마, 라고 말했을텐데. 확실히 나도 예전에는 너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저주했다. -하지만 지금, 난 자신의 몸을 원래 인간의 몸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다. 세상에 분풀이를 해서 만족할 생각은 없어."

-그것은-

예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란가스가 그런 것을 눈치챌 리도 없었다.

"...뭐... 라고..."

쉰 목소리 속에는 틀림없이 분노의 색이 섞여있었다.

"같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자고 한다면 손을 잡아도 상관 없어.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 준다면 더 수월하다. 하지만 그저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없어! 그런 거!"

제르의 말을 가로막고 란가스가 소리쳤다.

"없어! 우리들이 원래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 같은 건! 나도 말했다! 도망칠 때! 날 이렇게 만든 마도사 한 명을 잡아놓고! 돌려줘! 날 인간의 몸으로 돌려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리야! 그 녀석은 나에게 겁먹고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건 무리라고! 한 번 합성한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따위, 아무도 몰라!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어, 라고! 알겠나!? 우리들은 이대로인 거다! 평생 쭉 이대로라고!"

란가스의 흥분에 돌아가는 것은 제르의 조용한 말.

"누구지? 그 마도사는."

"...무슨... 의미냐?"

"그 마도사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알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 녀석이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을 모르고, 그걸 연구하고 있는 자의 존재도 몰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없다고 정해진 건 아니다. 확실히 희망은 미미하지만- 그 미미한 희망에 쉽게 등을 돌리고 그저 세계를 원망하기만 하는 듯한 인생을 살 생각은 없어."

"...과연... 네놈도인가..."

빠드득, 란가스가 이를 갈았다.

"나와 같은 괴물인 주제에... 네놈도 날 거부하는 건가! 그렇다면 상관없어! 나도 네놈을 거부할 뿐이다!"

말하자마자 란가스가 땅을 차고 달렸다.

제르가 손에 든 적광의 검이 어둠을 벤다.

촤악!

미란다가 들은 것은 발소리인지 참격 소리인지.

천천히-

제르와 란가스, 두 사람은 발을 돌려 다시 대치했다.

"...과연... 그 피부는 겉만 그럴사한 장식이 아니라는 건가..."

오른팔을 얕게 베인 란가스는 그러나 얼굴에서 웃음은 지우지 않은 채 제르를 향해 중얼거리듯이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교착했던 그 일순.

제르의 검은 란가스의 팔을 얕게 포착했고, 그리고 란가스의 발톱도 역시 제르의 두 팔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옷은 찢어졌으나 단단한 느낌이 있었을 뿐 제르가 부상을 입은 기색은 없다.

"그렇다면-!"

란가스는 입 속에서 주문을 외워-

"디스 팽!"

'힘 있는 말' 을 던진 그 찰나.

흔들.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밤의 어둠보다 검은 뭔가가.

그것이 몸을 구부린 찰나.

파악!

제르가디스가 손에 든 검을 자신의 눈 앞 - 지면 위에 꽂아넣었다.

"뭣!?"

...오오오오오오오...

란가스의 경악의 목소리에 인간의 귀에는 들릴 리 없는 뭔가의 비명이 겹쳐졌다.

디스 팽-

자신의 그림자 속에 이계에서 그림자 용을 소환하여 상대의 그림자를 먹는 주문-

먹힌 그림자의 주인은 그림자와 같은 부분을 잃는다.

약한 달빛의 흐릿한 그림자 속에서 시도한 이 주문은, 버티기는 커녕 뭐가 일어났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를 매장시킬 수 있다.

보통 실력자가 상대라면.

제르가디스는 마력을 머금은 검 - 아니, 검이 만들어낸 엷은 적광의 일격으로 그림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용을 베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경악의 말 대신 란가스는 다음 주문을 외웠다.

"프리즈 애로!"

출현한 십수개의 냉기의 화살이 허공을 달리기 시작한 그 찰나, 제르는 크게 옆으로 뛰어 사정 밖으로 착지하여 그대로 란가스를 향해 땅을 찼다!

"기다려-!"

란가스의 말이 끝나기보다 먼저!

 

촤아악!

 

달빛에 붉은 핏방울이 반짝였다.

 

싸움은 끝났다.

매우 쉽게.

뭐가 어떻게 됐는지, 그 모든 것을 미란다는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제르가디스의 힘이 압도적인 것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참격을 받고 대지에 쓰러진 란가스에게는 아직 가까스로 숨이 있었다.

"-나는-"

란가스는 소곤거렸다.

괴로운 숨 아래서.

"-나는 너다- 너는 나다- 너는- 너 자신을 벤 거다-"

"아아- 넌 확실히 옛날의 나 그 자체다-"

란가스의 말을 제르는 인정했다.

만약 자신이-

이전의 동료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이 란가스와 같은 길을 헤매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 걸린 농월을 올려다보며 제르는 문득 그런 것을 생각했다.

"-상관없-다- 나는- 여기서 죽어- 이 몸에서 해방되고- 너는- 계속 살아서- 계속 절망해라-"

"나는 산다. 하지만 절망할 생각은 없어."

제르의 말이 닿았는지 어쨌는지-

란가스는 길고 큰 숨을 토해내고-

그리고 그대로, 두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에는 그저 내려오는 달빛 속에 제르가디스 혼자서 서 있을 뿐-

 

"...어... 어이..."

미란다는 가늘은 목소리로 제르를 향해 말했다.

이미 움직일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도와... 도와줘... 부탁이야..."

제르가디스는 작은 한숨을 한번 쉬며 검을 거두고 그녀의 옆으로 걸어갔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그 눈동자 속에는 멸시와도 닮은 색이 있었다.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겠어."

그 말에 더욱 미란다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도와주지 않는 거군... 나..."

"-아니. 역시 넌 이 일에는 어울리지 않아. 분명히 말해서 대단한 상처가 아니야. 과장된 호들갑이다."

"..................예?"

그리고 처음으로-

미란다는 깨달았다.

제르의 눈동자에 머물러 있는 것은 멸시의 색 따위가 아닌 - 단지, 어이없어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그 후 벌써 수년-

지금도 때때로 미란다는 문득 그 제르가디스를 생각할 때가 있다.

무사히 있는 걸까?

인간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

여관의 여주인이 되어 있는 지금의 자신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

미란다에게는 언젠가 홀연히 그 하얀 모습이 여관의 문을 지나 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