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끝에 보이는 것



스페셜 21권에 실린 가우리의 외전. 가우리가 리나와 만나기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 가우리의 의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 포인트는 작가만 빼고(?) 모두가 인정한 정체명확의 검은 머리 아저씨.




검을 뽑았다.

잘 닦인 은빛의 검날은 눈부신 햇빛을,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을 비추어냈다.

둔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희대의 명검도 아니었다.

칼날 쪽은.

청년의 눈은 특징적인 장식이 덧붙여진 손잡이 쪽에 그저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청년의 뇌리를 오고간다.

만약, 이런 게 없었다면-

발작적으로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다를 향해 치켜들어-

"-던져버리려고? 아깝게시리."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

반사적으로 시선을 보낸다. 몸을 돌림과 함께 길게 늘어뜨린 금발이 바닷바람에 흩날린다.

쿠르시다 마을. 바다에 면해있는 것을 빼면 특히 내세울 것 없는 작은 어촌.

선착장에는 몇 척의 아무도 없는 작은 배와 낚시꾼 한 명.

"그 검에 원한이라도?"

그 낚시꾼이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바다에 드리워진 낚싯줄과 물결에 흔들리는 찌에 머무른 채.

묘한 사내였다.

복장은 - 셔츠에 자켓, 바지에 부츠. 극히 흔해빠진 물건이었다.

길게 기른 검은 머리에, 미녀라고 착각할 정도로 단정한 용모.

연령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망설이며 검을 든 채 서 있는 청년 검사와 비슷한 나이로도 보였고, 실은 훨씬 많다고 하면 그것도 납득이 갈 것 같았다.

입에 문 담배는 나름대로 어울렸지만 손에 든 싸구려 낚싯대가 아무래도 분위기에서 겉돌고 있었다.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 입을 열었다.

"담배... 불 안붙였는데."

"아아. 금연중이라서. 집에 있는 마누라랑 꼬맹이놈들이 싫어하거든."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말투는 몹시 난폭했다.

"...마누라랑 꼬맹이라니... 당신 그런 나이야?"

"내 나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래서? 버릴 거야? 그 검."

"관계없잖아? 당신하곤."

청년은 무뚝뚝하게,

"아. 말해두겠는데. 버릴 거면 달라고 해도 안줄 거야."

"그런 말 안해. ...뭐, 관계없다는 건 확실하군. 댁하고 그 검에 무슨 일이 있었건. 그 검을 누군가가 주워서 몇사람을 죽이건. 댁이 가지고 다니면서 그 검으로 몇 사람을 구해주건. 확실히 나하곤 상관없어."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지금은 손을 씻었지만 나도 예전에는 용병생활을 했었거든. 그래서, 그 당시의 폴리시가 '도구에 구애받지 않는 녀석은 2류지만, 도구에 휩쓸리는 녀석은 3류 이하다' 라는 거였지. 그래서 그만 참견을 해버린 거야."

"..................."

"뭐, 신경쓰지 말라구. 마음에 안드는 검 따윈 냉큼 바다에 집어던져버려. 그래서 네가 들쳐업은 무언가가 깨끗이 사라지는 거라면 말이야."

"..............."

청년은 잠시 말없이 서서 - 이윽고 검을 칼집에 꽂았다.

"아저씨, 이름은?"

"어이어이. 아저씨라고 하면 안되지. 그리고 누가 말 안해주던가? 상대방의 이름을 물을 때는 먼저 자기부터 말하라고."

"난 - 가우리야. - 가우리 가브리에프."

"솔직해서 좋군. 그럼 내가 충고 하나 하지. 자기가 이름을 말했다고 언제나 상대도 정직하게 이름을 말한다는 법은 없어. 세상이란 그런 거다."

"...뭐야 그게."

가우리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

그 뒤에는 그저 물결치는 소리가 - 흘러갔다.

 

보기드문 일이 생겼다.

손님이 둘씩이나 왔다.

큰 시가지에서 떨어진 작은 어촌.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는 쉬어가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다음 마을로 떠날 뿐.

그런데 오늘은 발을 멈춘 자가 둘.

한쪽은 내력을 알 수 없는 여행자. 이쪽은 뭐어 그렇다고 치고, 흥미가 있는 것은 다른 한쪽.

행색으로 봐서 아무래도 여행중인 용병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실패하면 반격받아 피해를 입게 될 지도 모른다.

뭐어, 그건 그거대로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이번에는 그저 여행자들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랄 뿐이다.

상상한 것만으로도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응?"

중얼거리며 사내는 발을 멈추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바다와 산 사이에 위치한 이 작은 토지에서는 산 너머로 태양이 숨는 것도 빨랐다.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해변에는 사내 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낚이지도 않는 낚시를 일찌감치 접고 여관으로 향하던 도중.

사내는 확실히 시선을 느꼈다.

낌새를 더듬어간 그 끝에는, 뭘 위해 지어진 것인지 작고 너덜너덜한 오두막 하나가 저물어가는 서쪽 태양빛을 받으며 검게 머물러 있었다.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 손에 든 낚싯대로 입구의 거적을 밀어올렸다.

그 안에는 - 그저 몇 개의 잡동사니와 축축한 어둠이 있을 뿐.

그것만 확인하고 사내는 흥미를 잃고 발길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작은 여관의 1층에 있는 식당에는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슬슬 저녁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 손님은 한명 뿐.

뭐어 확실히 이 식당에 좋아서 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메뉴는 신선한 것밖에 내세울 것 없는 생선 요리 몇 종류와 미리 만들어둔 스튜가 있는 정도. 이런 정도라면 이 지방 사람은 자기 집에서 먹어도 별 차이가 없다.

제대로 된 여관이라기보다, 우연히 큰 집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취미 반 부업 반으로 시작한 여관 겸 식당이리라.

열려진 입구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이미 암적색으로 물들어, 가게 안에 쓸쓸한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우리는 그 단 하나뿐인 손님이었다.

조금 전에 주문한 요리는 아직 오지 않는다.

급사에서 조리까지, 가게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여주인 한명 뿐. 그러니 아무래도 재촉하기 힘들다.

"심심해 보이는군."

할 일 없이 멍하니 있던 그를 향해 옆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는 조금 전 해변에서 들었던 것이었다.

"...당신이군..."

손으로 턱을 괸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는 가우리.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검은 머리 사내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가우리 쪽 - 테이블에 기대어진 검에 시선을 보내며,

"...결국 안버렸군. 그 검."

"내버려둬. 그보다 왜 일부러 거기 앉는 거야. 빈자리는 다른데도 있잖아."

"그런 말 말라니까.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게 더 맛있다고 옛날부터 그러잖아?"

"폼잡더니 댁도 쓸쓸한가보지?"

"그럴 지도."

가우리의 야유를 검은 머리 사내는 가볍게 받아넘기고 희미하게 자조의 웃음을 지으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영 아니야. 가족이 생기고 시끄러운 것에 익숙해져버렸지. 적당히 이유를 갖다 붙여서 오랜만에 맘편히 혼자 여행... 하지만 해 보니까 앗 하는 사이에 질려버리더군. 금방 돌아가는 것도 뭐하니까.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가... 그리고 이 마을에서, 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당신을 만났던 거야."

"내가 당신 심심풀이 땅콩이야?"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기를 노골적으로 흩뿌려대는 녀석도 흔치 않으니까. 무심코 말을 걸어버린 거다."

"고민은 누구라도 있잖아."

"확실히 뭐어, 그 말은 맞아."

말하고 검은 머리는 테이블에 몸을 내밀며 목소리를 죽이고,

"하지만 같은 남자로서 하나만 어드바이스 해 주지. 반한 상대 앞에서만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돼."

"에엣?"

그 말에 가우리는 안색을 바꾸고 허둥지둥 휙휙 손을 흔들며,

"나... 나는 별로 당신한테 반하진 않았어!"

"당연하지 멍청아! 아무도 그런 말은 안했어!"

푸른 힘줄을 세우며 소리치는 사내.

"하지만 얘기의 흐름상..."

"지금의 흐름을 어떻게 읽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고민하지 말라고까진 안하겠지만 그걸 남 앞에 보이는 건 멋이 없다고 말한 거야!"

"...뭐야...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한 거야 난!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니놈 자식은!?"

"생겨먹다니... 그래서 결국 당신은-"

말하려다가 가우리는 말을 끊었다.

시선을 보낸 그 끝에는 가게 입구.

그곳에는 세 사람의 사내들이 조용히 서서 가우리들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행중인... 전사분이시죠?"

시선이 맞은 것을 기회로 말을 걸어온 것은, 머리카락도 길게 기른 수염도 흰 노인이었다.

"아아... 그런데요..."

"실은 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일단 식사라도 함께 하시면서 들어주시겠습니까..."

가우리는 잠시 망설임의 색을 보인 후,

"...뭐어... 얘기를 듣는 정도라면 상관없지만..."

"감사합니다."

깊이 인사를 보내고는 노인은 일단 주방 안으로 향했다.

주방에 있던 여주인과 두세마디를 주고받은 후 다시 돌아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식사는 저희쪽에서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하고 노인은 가우리들과 같은 자리에 앉았고 동행한 사내 둘이 그 옆에서 대기했다.

"-그래서? 하실 얘기란 건?"

"...예... 저는 이곳의 촌장일을 하고 있는 카일 브니츠라고 합니다."

가우리가 재촉하자 노인은 주섬주섬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어떻게 얘길 꺼내야 할지... 고민되긴 합니다만..."

말을 시작할 무렵 여주인이 쟁반에 얹은 요리를 들고와서 가우리와 검은 머리 사내의 앞에 놓았다.

샐러드와 스프, 빵과 생선 조림. 지극히 평범한 세트 메뉴였다.

"...아, 어서 드십시오. 얘기는 식사하시면서 들어주셔도 상관없으니. 자."

"...그럴까요?"

권유를 받고 가우리와 검은 머리 사내가 포크를 쥐는 것을 본 후 촌장은 말을 이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실은 얼마 전부터 이 마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흠."

적당한 맞장구를 치며 해초가 들어간 샐러드를 입에 무는 가우리.

검은 머리의 사내는 빵을 뜯으며 말없이 촌장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산과 바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사냥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죠."

"호오."

가우리의 포크는 생선 조림에.

"-얘기하는 도중에 미안하지만 잠깐 기다려."

일동의 움직임과 말을 멈춘 것은 검은 머리 사내의 목소리였다.

결코 강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거역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사내는 가우리에게 얼굴을 향하며,

"일단 충고해 두겠는데 그 생선 조림은 손대지 마. 이상한 약이 들어있다."

""뭣...!?""

안색을 바꾼 것은 촌장과 그 부하들이었다.

"무... 무슨 바보같은...!?"

안색을 완전히 바꾸며 말하는 촌장에게 검은 머리 사내는 비꼬는 웃음을 보내며,

"이상하더라고. 요리가 나오는 타이밍이 말이야. 그리고 생선 조림의 냄새. 보르디 바다뱀의 독 정도 되는 건가? 말한 순간 정직하게 안색을 바꾼게 결정적이었지. 그래도 아니라고 우긴다면 당신, 먹어볼래? 이거?"

"-젠장!"

나직이 뇌까리며 달려든 것은 부하 중 하나.

목표는 테이블에 세워진 가우리의 검.

그러나 가우리는 먼저 검을 휘어잡고 일어서며 손잡이로 그 부하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으윽!?"

신음하며 사내는 바닥에 엎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

가우리의 물음에 촌장은 쓰디쓴 빛을 그 표정에 담으며,

"...마을을 위해서요... 용서하게..."

"누가 용서한데 멍청아!"

우당탕탕탕!

"으억!"

외침과 함께 흑발이 발로 뒤집어 엎은 테이블이 촌장의 안면을 직격했다.

"여관 놈들 전부 한패야! 밖으로 나가자!"

"아... 알았어!"

두 사람은 가게를 뛰쳐나가 -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못박혔다.

주위에는 마을의 사내들이 모여있었다.

손에손에 나이프나 곤봉, 갈고리 등의 무기를 들고.

"...뭐야... 마을 전체가 한패냐 이거."

어이가 없다는 듯한 흑발의 목소리.

"어떡할래? 네 검으로 모조리 쓱싹쓱싹 해치워버릴까?"

"그럴 수는 없잖아."

가우리는 검을 한손에 들고, 그러나 칼집에서는 뽑지 않은 채,

"왜이러는 거야!? 사정 설명 정도는 해 달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주춤주춤 포위망을 좁혀올 뿐.

"뭘 알고나 있는 거야 네놈들?"

검은 머리가 대신 소리를 높였다.

"누군가를 죽일 기색을 보인다는 건 그 상대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말해두겠는데 아프다. 칼에 베이는 건."

빙글 하고 일동을 둘러보며,

"처음에는 두들겨 맞는 정도의 느낌 뿐이야.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게 자신의 피라는 걸, 눈 앞에 뒹굴고 있는 게 자신의 팔다리라는 걸 깨달은 순간 강렬한 아픔이 엄습하지. 아니, 아픈 건 차라리 귀여운 편이랄까. 상처에서 불에 지진 꼬챙이가 탭댄스를 추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 정수리까지 관통한다. 쇼크로 그대로 뒈져버리던지, 설령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상처가 나을 때까지 몇날 며칠 몇백일을 열과 아픔에 시달리게 돼. - 자아. 제일 먼저 체험해보고 싶은 건 누구지?"

그 말에 사내들 사이에 동요가 생겨났다.

흑발이 갖고 있는 것은 작은 짐과 낚싯대뿐이었지만 가우리는 검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실력이 프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소의 희생은 각오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그 희생이 되고싶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없을 것이다.

"...얼래... 희망자는 없는 거냐. 그럼 이쪽에서 지명한다. 가자 가우리. 목표는..."

흑발은 주위를 둘러보고 - 거리의 한편을 척! 하고 가리키며,

"그쪽이다!"

손을 뻗은 쪽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좌우로 흩어진다.

"달려!"

흑발의 목소리와 동시에 두 사람은 땅을 찼다.

완전히 기가 죽은 사내들은 덤벼들기는커녕 반대로 물러설 뿐.

가우리와 검은 머리 사내는 쉽사리 포위를 돌파하고 사람없는 거리를 달려갔다.

그제서야-

가게 안에서 비틀거리며 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상황을 파악하고,

"뭣들 하는 거냐!? 절대로 놓치지 마!"

그러나 그 목소리가 메아리쳤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산 속의 밤은 어두웠다.

달과 별의 어렴풋한 빛도 우거진 나뭇잎에 가로막혀 거의 대지에 닿지 않는다.

그런 어둠이 지배하는 대지에 두 사람은 있었다.

"오오. 산 수색까지 시작하고 자빠졌네. 고생이 많군."

얼핏얼핏 보였다 안보였다 하며 다가오는 횃불빛에 눈길을 보내며 흑발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마을 인간들끼리 작당해서 살인을 하려고 했다는게 들통나면 곤란할 테니까. 당연히 조급해지기도 하겠지."

"...저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돌아본 흑발에게 가우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당신... 왜 아까부터 계속 낚싯대를 짊어지고 다니는 거야?"

"신경쓰지 마. 불이 났을 때 베개 들고 우왕좌왕하는 녀석이 있잖아. 그거하고 같은 거야."

...실은 당황했던 거였어...?

내심 중얼거리는 가우리.

"뭐, 그건 아무래도 좋다고 치고. 그래서? 어쩔 거야? 이제부터."

"그러는 당신은 어쩔 생각인데."

가우리가 되묻자 사내는 왠지 재미있다는 듯이,

"그렇군... 가장 간단한 건 이대로 잽싸게 어딘가로 도망쳐서 전부 다 잊는다는 거지."

"무책임하군... 하다못해 다른 마을에서 관리인한테 알린다던가..."

"바보냐? 관리인한테 이런 말 해봤자 어차피 믿어주지 않을 거야. 만약 믿어줘서 수사가 시작된다 해도 마을 녀석들 전원이 입을 맞추면 일은 흐지부지하게 끝나겠지. 물론 반대로 간단하지 않은 방법도 있지만."

"간단하지 않은 방법?"

"그래. 왜 놈들이 우리들을 노렸는지 그 이유를 밝혀서 원인을 박살낸다."

"과연. 그럼 그 방향으로 나갈까."

"...무지하게 쉽게 말하는군. 이유를 들어도 아무 해결도 안날 지도 모른다구."

"그런 건 들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게다가-"

가우리는 검 손잡이를 가볍게 치며,

"...우리 집에서 말이야, 이 녀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분쟁이 있었거든. 이런 것만 없으면... 하는 생각에 이 녀석을 가지고 뛰쳐나왔지. 하지만 당신은 말했어. 이 녀석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걸 지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흐음-"

검은 머리 사내는 작게 웃음을 지으며,

"좋아. 그럼 우선은 마을 녀석들을 붙잡아서 사정을 듣기로 할까."

다시 횃불의 무리를 바라보고-

"이쪽이야."

말하며 길도 없는 대지를 달렸다.

반보 뒤쳐져서 따라가는 가우리.

길도 없고 빛이라곤 거의 없는 밤의 산을 두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뛰어내려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발견한 것은 남자 넷으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다.

전원이 왼손에 횃불, 오른손에 뭔가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우선 검은 머리 사내가 목소리만으로 위협을 가한다.

"소리내면 죽인다."

움찔.

사내들의 몸이 떨렸다.

거기에 가우리를 수풀 속에 남겨두고 검은 머리 사내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한명은 바로 옆에 있다. 도망칠 생각 마."

사내들은 일순 압도당했지만 - 그러나,

"...나... 낚싯대 움켜쥐고서 뭘 폼잡고 앉았냐 넌!?"

흑발이 손에 든 것을 보고 사내 중 하나가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흑발은 상대도 하지 않고,

"네가 가진 막대기보단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

"뭐라곳!?"

검사 - 가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안심한 것이리라. 사내는 손에 든 곤봉을 쳐들고 흑발을 향해 돌진했다.

찰나.

흑발이 손에 든 낚싯대가 바람을 가르며 진동했다.

"끄악!?"

소리를 지르며 무기와 횃불을 떨어뜨리고, 얼굴을 부여잡은 채 몸을 웅크리는 사내.

다른 사내 셋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휘어진 낚싯대 끝이 사내의 눈을 실명하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스쳤다는 것을 꿰뚫어본 것은 나무그늘에 있는 가우리 뿐.

흑발은 몸을 웅크린 사내의 목덜미를 붙들고 일으켜세워,

"...말해두겠는데 나도 용병 출신이다. 맨손이라도 네놈들같은 풋내기를 목졸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죽기 싫으면 말하시지. 왜 우리들을 죽이려는 거지?"

"...우우우우우우우리들도 살인같은 건 하고싶지 않아!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단 말이야! 할 수 없잖아!"

"네놈들이 죽는다고?"

흑발은 눈썹을 찌푸리고-

사내를 놓고 크게 뒤로 뛰어 물러섰다.

순간.

퍼엉!

사내의 육체가 사산했다!

피가 튀고 무수한 살점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정적. 그리고.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동료의 죽음을 마침내 이해한 세 사내들은 절규를 내지르며 도망쳤다.

흑발은 - 쫓지 않는다.

그저 수풀 속 - 가우리가 있는 곳의 반대쪽에 가만히 눈길을 보내고 서 있을 뿐.

"뭐야!? 지금 그건!?"

나무숲의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묻는 가우리에게 사내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묘한 짓을 한 거야. 아무래도 그 녀석이 속히 말하는 흑막인 것 같군. ...지금은 이미 사라져버렸지만."

그 말에 가우리는 주위에 시선을 보낸다.

확실히 사내가 죽기 직전 다른 낌새가 하나 출현했고 - 바로 조금 전에 사라진 것을 가우리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야? 그 녀석!"

"..........................."

가우리의 물음에도 흑발은 뭔가를 가만히 생각한 채 묵묵히 말이 없었다.

가우리는 작게 숨을 내쉬고 사내들이 도망쳐간 - 마을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도망친 놈들... 분명 지금 그거 당신이 했다고 착각하고 있을 거야. 어쩔 거야."

"마을로 간다."

흑발의 대답은 간결했다.

말함과 동시에 걷기 시작했다.

"...에... 어이... 잠깐...!"

허둥지둥 뒤를 쫓는 가우리.

"마을이라니...!? 어쩌려고!?"

"어떻게든 할 거야."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든이 어떻게 한다는 건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짐작이 가거든. 나."

""정말이야!?"

"그래. 하지만 여기서 말했다가 틀렸으면 멋없으니까 말 안해."

"뭐야 그게."

"신경쓰지 마. 단지... 내 상상이 맞다면... 상대는 조금 성가신 녀석이라는 뜻이 된다. 안따라오는 편이 좋을 걸."

그 말에 가우리는 욱해져서,

"기다려. 당신이 꽤 강하다는 건 조금 전 일로 알았지만. 나도 이래봬도 조금은 실력에 자신이 있다구."

"조금으론 곤란해. 우리 큰딸처럼 식칼로 플라즈마 드래곤을 잡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몰라도."

"식칼 한자루라니... 그런 녀석이 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큰딸이라는 사람이 식칼을 쥘 수 있는 나이라는 건... 당신 보기보다 역시 꽤 나이를 먹었나 보네."

"시끄러. '역시' 라고 하지 마. ...뭐어 아무래도 좋아.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와. 하지만 만약 내가 도망치라고 하면 주저없이 도망치라구. 알았지?"

"...알았냐고 해도... 잘 모르겠어..."

"몰라도 좋으니까 도망쳐."

말하며 둘은 마을을 향해 내려갔던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횃불빛이 무수한 그림자를 황야에 새겨넣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벌판.

그 장소에서 가우리들과 수십명의 마을 사내들은 대치했다.

사내들 사이에는 조용한 살기가 넘치고 있었다.

팽팽한 공기를 조용히 헤치며 사내들 사이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선 것은 촌장이었다.

"왜 돌아왔지?"

그 물음에 흑발은 낚싯대를 어깨에 진 채,

"그냥. 댁들한테 명령을 내리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고싶어져서."

...웅성...

그 말에 사내들이 술렁인다.

"...누구한테 들었나!?"

"아니. 어쩐지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 뿐이야."

묻는 촌장에게 말하는 검은 머리 사내.

횃불빛이, 촌장의 얼굴에 드리워진 고뇌의 표정에 음영을 새겼다.

"...이쪽의 사정도 헤아려준다는 건가... 그렇다면... 부탁이네. 마을을 위해 죽어주게."

"좋아."

담백하게 흑발은 대답했다.

그 자리의 전원이 한순간 말을 잃고 - 가우리가 항의의 소리를 높이기보다 먼저.

"단, 그 대신-"

흑발은 왼손으로 촌장을 가리키며,

"그 전에 당신, 나를 위해 죽어 줘. 혼자서 죽는 건 외로우니까."

"...뭐...?"

촌장의 신음과 동시에 흑발은 다른 사내를, 그리고 또 다른 사내를 순서대로 가리키며,

"그리고 촌장 다음에는 네가 죽어 줘. 그 다음에는 너. 그렇군... 그 다음은 네가 좋겠어. 다음은 그쪽에..."

"웃기지마! 왜 우리들이...!"

지정받은 사내 중 하나가 소리를 높이자 흑발은 비꼬는 웃음을 지었다.

"얼랠래.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못죽는 놈이 자기들을 위해 남한테 죽어달라는 거야? 까불지 마. 쓰레기같은 놈들. 네놈들을 위해 뒈지느니 늑대한테 먹히는 편이 낫겠다."

"도발할 셈인가?"

촌장의 목소리에 노기가 담긴다. 그러나 흑발은 신경쓰지 않고,

"앙? 이제 알았어? 뭐 신경쓰지 마. 댁들은 확실히 쓰레기지만 그 쓰레기놈들을 협박해서 하찮은 명령을 내리고, 자기는 오두막집 그늘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쓰레기 이하의 하등생물보다는 나으니까."

흑발의 말에 사내들이 얼어붙고-

"-눈치채고 있었나. 내 존재를-"

목소리는 일동에게서 떨어진 - 흑발이 말한 오두막집 부근에서 들려왔다.

순간, 마을사람들 사이에 두려움의 색이 달린다.

"...루조울... 님..."

신음하듯이 촌장이 중얼거린 것은 '그것' 의 이름인가.

흑발은 시선을 그쪽으로 보내고,

"우리 작은 딸이 마도를 좀 알거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자랑삼아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줬었지. 당신네들, 인간의 공포니 적의니하는 걸 먹고 산다면서. 경비병도 없는 작아빠진 마을 녀석들을 위협해서 마을에 찾아온 여행자들을 죽이라고 시킨 건가?"

"...대단한 상상력이군..."

시커먼 오두막의 그늘에서 천천히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사람이라고 보기엔 너무 머리가 큰 게 아닐까? 게다가 길게 늘어진 몸은 너무 가늘고 양팔은 너무 길다.

갈팡질팡하며 뒤로 물러서는 마을사람들.

그리고 가우리의 눈은 - 희미한 빛 속에서 그것의 모습을 보았다.

보통 인간보다 두배는 큰 머리에는 머리카락도 귀도 코도 입도 없고, 갓난아기의 주먹만한 크기를 한 눈이 몇 개씩이나 뒤덮여있었다.

물론 그런 것이 인간일 리는 없다.

"...어...!?"

경악의 소리를 높이는 가우리.

"어떻게 입도 없는데 말을 하는 거지!?"

"그거냐!? 놀라는 포인트가!?"

즉시 따지고 들어가는 흑발.

"-마족- 이라는 거야. 역시 조금은 성가신 상대지."

"...그걸 알면서도 도발하고, 조금 성가신 상대라는 한마디로 정리하다니... 다소 자신은 있는 모양이군."

마족 - 루조울은 흔들흔들 공중에 떠가는 듯한 발걸음으로 일동을 향해 다가왔다.

야윈 노인같은 가느다란 손으로 마을사람들을 가리키며,

"...확실히 네놈이 말한 대로 이 녀석들은 단순한 쓰레기다. 나는 명령했다. 본보기로 몇 사람을 죽인 후.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면 너희들 손으로 마을에 머무는 여행자들을 죽여보라고 말이야. ...거역하는 놈도 한둘쯤은 나올 줄 알았지만... 결국 아무도 거역하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역하긴 커녕 죽은 사람의 금품을 자기들끼리 나눠갖기까지 하더군. 나에게 위협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태연히 강도짓을 하는 녀석들이다."

장본인에게 그런 말을 듣고 마을사람들 사이에 분노인지 당황함인지 알 수 없는 공기가 넘쳐났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루조울을 향해 항의의 소리를 높이는 자는 없었다.

루조울의 눈 - 전부가 동시에 웃음의 형태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 나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어. 외부인에게 방해받을 마음은 없다. 나의 식사를 망쳐줄 생각이라면-"

"죽이시겠다? 산을 수색하고 있던 놈을 해치웠을 때처럼."

"그렇군. 마족의 진짜 무서움 - 모르고 있다면 가르쳐주마!"

루조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흑발과 가우리는 크게 뛰어-

콰광!

찰나의 후, 두 사람이 서 있던 주변의 지면이 폭발했다!

마을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격.

그러나 흑발과 가우리의 눈은 그 정체를 포착하고 있었다.

허공에 생겨난 검은 마력구.

마족이 내쏜 그것이 밤의 어둠 속에 녹아든 채 날아와서 착탄과 함께 폭발한 것이다.

흑발이 단숨에 마족과의 사이를 좁혔다.

루조울은 연달아 검은 구체를 만들어 던졌지만 흑발에게는 스치지도 않는다.

품 속에 뛰어들어-

"그걸로 어쩔 셈이냐!?"

마족의 조소. 개의치 않고 흑발은 오른손을 번뜩이며 낚싯대로 마족의 머리를 후려쳤다!

"-!?"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루조울은 크게 뛰어 물러섰다.

"말도 안돼!?"

목소리에 번지는 경악의 기색.

가우리나 마을사람들에게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얻어맞고서는 뭐가 말도 안된다는 건지.

"...네놈들 마족에게 보통 무기는 통하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하물며 낚싯대가."

비웃듯이 말하는 흑발.

"순마족에게는 마력이나 기력 등의 정신공격만이 유효하다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나처럼 무기에 기력을 담을 수 있다면 검이든 낚싯대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뭐, 이것도 우리 딸한테 전수받은 거지만."

"...과연... 하지만... 일격으로 쓰러뜨릴 정도의 힘은 없고, 괜시리 말이 많다... 즉... 결정력은 부족하다는 뜻이군..."

"...웃! 들켰다!"

흑발의 뺨을 흐르는 땀 한줄기.

"그렇다면 멸망하라! 나를 우롱한 대가로!"

루조울이 다시 무수한 어둠을 만들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잇달아 흑발을 향해 풀어냈다.

흑발은 질주하며 이동하여 그것들을 피했고-

순간.

다가오는 검은 구체 중 하나가 바로 근처에서 무수한 작은 검은 구체로 분열했다!

"-앗-!?"

흑발의 경악의 목소리. 그리고-

쿠과과과과과광!

이어서 일어난 폭발이 대지를 도려내고 모래먼지를 뿜어올렸다.

루조울은 흑발이 있던 쪽을 주목했다. 해치웠나 - 혹시 살아있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전혀 부상이 없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 때.

다른 장소에서 먼지를 가르며 사이를 좁혀온 것은 가우리!

검을 뽑아들고 사선으로 휘두른다!

그러나 그 칼날이 루조울에게 닿기 전에 - 도신이 느닷없이 뽑혀나가 저 멀리로 날아갔다.

칼날을 고정하는 잠금쇠가 부러졌는지, 빠져나갔는지.

-자신도 그 남자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결국 그건가?-

루조울의 가슴 속에 떠오른 조소의 말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빛이여!"

가우리가 외쳤다.

칼날이 없는 손잡이에서 빛이 생겨났다.

사람의 정신력을 마력의 칼날로 바꾼 빛은 루조울의 어깨부터 몸통을 비스듬히 베어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짐승같은 마족의 비명.

그러나 몸통을 베이고서도 루조울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본체는 그 머리 부분. 흙덩이로 돌아가는 하반신을 남기고 머리와 가슴이 검의 간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윽, 공중에 떠올랐다.

그 때.

"에르메키아 란스!"

목소리와 섬광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흙먼지를 뚫고 루조울의 머리에 꽂혔다!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마족은 허공에서 몸부림쳤다.

그 시야에 그림자가 들어온다.

그것은 - 검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높이 뛰어오른 가우리의 모습!

흰 빛을 발하는 검을 휘두르고.

루조울의 무수한 눈동자가 다가오는 빛의 칼날을 비추어내며-

촤악!

일격은 마족의 머리를 가르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바닷물 냄새를 황야로 실어오며.

루조울은 대지에 떨어지기도 전에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이윽고 흙먼지도 사라진 후에는.

가우리와 아무런 부상이 없는 검은 머리 사내가 서 있을 뿐.

가우리는 사내 쪽으로 눈길을 보내며,

"...당신 공격주문도 쓸 줄 알았구나."

"작은 딸한테 배웠거든. 이걸 비장의 카드로 쓸 생각이었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가우리가 손에 든 검으로 시선을 향하고,

"...사연있는 검이라고 하길래 그럭저럭 쓸만한 마력검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했는데... 전설의 빛의 검이었다니. 하필이면."

쓴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가우리의 어깨에 탁 하고 손을 얹고,

"버릴 생각이면 나한테 줘."

"그런 말 안한다고 했잖아!"

"바보같은 놈! 쪼잔한 마력검이라면 몰라도 빛의 검이라면 얘긴 다르지! 지금 줘 당장 줘 나한테 줘!"

"그러니까 안된다니까!"

"...멸망한... 겁니까...?"

언쟁하는 두 사람에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그쪽으로 눈길을 주니 마을사람들 속에서 한걸음 앞으로 걸어나온 촌장의 모습.

"...멸망한 겁니까. 마족은. 루조울은."

"...그래..."

흑발은 불쾌하게 끄덕이며 어디선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역시 불은 붙이지 않은 채.

"...감사합니다. 이걸로 마을도 무사..."

"웃기지 마. 영감."

차갑게 내뱉는 흑발의 목소리.

"난 그 마족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들어서 해치웠다. 그것 뿐이야. 덧붙여 말해서 위협을 받았다지만, 남을 죽여놓고 이제와서 피해자라는 투로 말하는 네놈들도 마음에 안들어. 이번 일은 다른 마을에서 관리인에게 말해두겠다. 네놈들이 한 짓은 확실히 책임을 지라구. 알겠어?"

"그... 그런..."

"'그런' 이 아니야. 관리인이 오면 발뺌하거나 속이지 말고 전부 솔직하게 말해. 안그러면 - 내가 이 마을을 박살내러 와 줄 거다."

내뱉고 흑발은 빙글 발길을 돌렸다.

"이봐. 가자. 가우리."

"에? 아아."

칼집과 빠져나간 칼날을 주워들고 종종걸음으로 흑발을 따라가며,

"...저기... 생각해 보면 마족도 없어졌으니 이 마을에 묵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멍청한 놈. 이런 마을에 어떻게 묵어. 마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서 덮치면 어쩔 거야."

"아. 그렇군."

"노숙하는게 차라리 나아. ...아-. 하지만 옷이 더러워지면 돌아갔을 때 마누라가 잔소리 해대겠지..."

"공처가야? 당신?"

"애처가야 멍청아."

떠나가는 두 사람의 등을 그저 달빛이 비춰주었다-

 

결국-

가우리가 검은 머리 사내의 이름도 못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헤어지고 나서 4일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자신의 검으로 진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가우리는 잘 모른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은.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숲 속을 가는 외길에서 가우리는 어느 광경과 맞닥뜨렸다.

한 소녀를 둘러싼 다수의 도적들.

그러나 - 마도사 차림의 소녀는 상당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이리라. 겁먹은 기색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도와줄 필요는 없을까 - 하고도 생각했지만.

-이 검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우리는 검을 뽑아들고 낭랑히 소리를 높였다.

"그 정도로 해 두시지!"

 

그리고 검사는 - 소녀와 만났다